안규례 아침산책 @ 봄이 오는 창문
2026학년도 수능 필적확인란 문구에는 안규례 시인의 시집 『봄이 오는 창문』에 실린 「아침산책」 중 한 구절, 바로 _“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_이 인용되었습니다. 맑은 오월의 생동감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 표현은 계절의 리듬과 인간의 감정을 동시에 포착하며, 청춘의 기운이 폭발하는 듯한 순간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수능 필적확인 문구로 선정된 배경에는 봄의 기운과 새 출발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밝은 에너지를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규례 시인의 작품 세계는 대개 일상의 소박한 장면 속에 스며 있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부모와 고향에 대한 진솔한 정서, 계절의 인사 말처럼 다가오는 섬세한 감각들이 작품마다 묻어나며 독자를 편안하게 붙잡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침산책」을 비롯해 『봄이 오는 창문』과 과거 시집 『눈물 혹은 노래』에 실린 여러 작품을 토대로 감상평, 해설, 시인의 프로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든 시는 별도의 섹션으로 감상과 해설을 제시하며, 같은 시인의 경우 프로필은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구성합니다. 자연과 기억, 가족의 서사, 사라지고 돌아오는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시인은 언어로 재구성하는지 긴 호흡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아침산책 안규례
아침산책 - 안규례
나가자, 오동 그린공원으로
비 그친 자리 꽃을 밟고 선 신록이
점령군처럼 온 산을 뒤덮고 있다바윗등에 앉아 내려다본 산
오월의 햇살 속으로 주체할 수 없는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싱그럽게 번져온다산허리 지나 위아래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명지바람
삐걱거린 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 곁에
나도 따라 걷는다가까운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는
청설모 노니는 길섶에
숨털 보송하게 핀 노루귀, 깽이눈
작년에 피었다 진 꽃들한 생이 잠시 계절을 돌아갔다가
그 길목을 따라
다시 돌아왔구나ㅡ 시집『봄이 오는 창문』 (2024,청어)
감상평
이 시의 첫머리는 “나가자”라는 단호하면서도 산책의 가벼운 추진력으로 문을 엽니다. 비가 그친 자리, 신록이 점령군처럼 산을 덮는다는 표현은 자연의 강렬한 기운을 생생하게 그려 냅니다. 초록의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이라는 비유는 시적 발상으로서 특별히 뛰어난 부분입니다. 청춘을 단순한 비유가 아닌 생태적 생동감으로 확장해 보여준다는 점이 「아침산책」의 핵심입니다. 시는 자연 묘사에서 가족이나 기억으로 넘어가기보다는 순수한 생태적 흐름을 따라 걷습니다. 계절의 어제를 지나 오늘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한 생이 잠시 계절을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말은 자연의 순환을 인간의 생과 겹쳐 표현한 매우 깊은 문장입니다.
해설
이 시는 봄의 산책을 통해 자연의 리듬과 생명의 흐름을 관찰하는 서정적 기록입니다. 생명성과 시간성, 순환성의 구조는 긴 문장에 우아하게 녹아 있으며, 특히 ‘명지바람’, ‘청설모’, ‘노루귀’, ‘깽이눈’처럼 특정 생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써 넣어 현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종종 시인은 자연 묘사에 그치지 않고 삶의 돌고 도는 흐름을 자연의 변주로 이해합니다. 여기서 “계절을 돌아갔다 다시 돌아왔다”는 문장은 자연 속을 걷는 행위 자체가 결국 살아가는 일과 같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버지의 곶감 - 안규례
아버지의 곶감 - 안규례
바람이 제멋대로 넘나드는
고향 집 행랑채
앞마당 가으내
주렁주렁 매달렸던 자식 같은 감이
백발이 되신 아버지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이제 막 솟구치는 젊음처럼
세상에 드러낸 잘 익은 맨몸
아버지는 떫은 자식들을
달포 남짓 우려내야 한다시며
하나씩 깎아 햇볕을 향해
차례대로 내보내 놓고이제는 저 하늘의 몫이라고
곶감 되기까지
책임을 하느님께 맡기시고
헛기침으로 툭툭 자리 털고 일어나신다ㅡ 시집『봄이 오는 창문』 (2024,청어)
감상평
이 시는 자연보다 가족의 정서가 중심에 있습니다. 감나무에서 딴 감이 아버지의 손끝에서 곶감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표현은 성장과 숙성, 양육의 행위를 은유적으로 엮어놓은 부분입니다. 감을 “자식 같은 감”이라고 부르는 순간, 곶감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곶감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생의 부드러운 결을 이어가는 의식처럼 나타납니다. “이제는 저 하늘의 몫”이라는 문장은 나이 든 아버지의 체념이 아닌,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고요한 신뢰를 보여줍니다.
해설
아버지의 삶을 감을 다듬는 행위에 겹쳐 그리는 방식은 전통적 서정시가 가진 미덕을 잘 따라갑니다. 이 시의 핵심 감각은 ‘손끝’이라는 단어입니다. 손끝이라는 작은 신체 부위를 중심으로 생의 역사가 연결되고, 곶감이라는 물성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아버지가 감을 깎고 내놓는 과정은 생의 인내와 경험을 압축한 장면으로 읽히며, 가족의 계보와 자연의 순환이 겹겹이 이어집니다.

고향 생각 - 안규례
고향 생각 - 안규례
이제나저제나
감자꽃 지길 기다리던 어머니
칡넝쿨 우거진
서릿재 넘어
싸목싸목 감자 캐러 가시겠다장마 오기 전
서둘러 캐야 한다시며
허리띠 질끈 동여매고
신새벽부터 종종걸음 치시겠다아파트 창가에
질펀하게 뻐꾸기 소리
찾아드는 한낮금방이라도 시큼한 열무김치에
감자 한솥 쪄놓고
돌담장 너머로
얘들아, 부르실 것 같다ㅡ 시집『봄이 오는 창문』 (2024,청어)
감상평
이 시는 고향의 흔적이 현재의 도시 생활 속에서 되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특히 “질펀하게 뻐꾸기 소리 찾아드는 한낮”이라는 표현은 감각적이고 선명하며, 귀를 통해 고향과 현재가 연결되는 장면을 잘 보여줍니다. 어머니가 감자를 캐러 가는 행동은 삶의 궤적 중에서도 매우 소박하지만 깊은 노동의 흔적입니다. 도시의 아파트 창가에서 문득 떠오르는 고향의 풍경은 시간 간극을 넘나드는 기억의 깊이를 만들어 냅니다.
해설
이 시의 전개는 회상의 구조와 현재의 감각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향, 감자꽃, 감자 캐기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장면을 생생하게 재구성합니다. 마지막 “얘들아”라는 호칭은 이미 부재한 목소리가 상상적으로 들려오는 순간이며, 떠난 이를 추억하는 전형적인 서정적 지점입니다.

상강 - 안규례
상강 - 안규례
잠시, 아주 잠시 한눈판 사이
저만치 멀어져가는 가을창문을 여니
유리알 같은 맑은 하늘 아래
북쪽을 향하는 날아가는
철새 떼의 뒷모습이 허전하다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냥 풀어 놓았던 시간들
아직도 발목을 끌어당기지만
오늘은 더 늦기 전에
첫서리가 내리기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길 한번 걸어 봐야겠다구절초, 쑥부쟁이, 개망초
안부를 묻고
은행나무, 신갈나무, 플라타너스
단풍 들어 떨어진 잎들에게도
안부를 물어야겠다
이 가을 떠나는 모든 영혼에게
작별 인사라도 나누어야겠다ㅡ 시집『봄이 오는 창문』 (2024,청어)
감상평
계절의 막바지를 조용하게 응시한 작품입니다. 특히 철새 떼의 뒷모습을 ‘허전하다’고 표현한 부분은 계절을 잃어버리는 감정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상강이라는 절기는 가을이 끝나기 직전의 순간으로, 시인은 이 짧은 시간의 틈을 붙잡아 삶의 기억과 닮아 있는 가을을 붙들고자 합니다. 산책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의식으로 확장됩니다.
해설
이 시의 중심에는 ‘안부를 묻는다’는 행위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뿐 아니라 들꽃과 나무, 떨어진 잎, 떠나는 영혼까지 모든 존재에게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자연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처럼 보는 시인의 감수성을 보여줍니다. 사라짐과 남아 있음, 계절의 교차점에서 인간의 삶 또한 흐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아버지의 들녘 - 안규례
아버지의 들녘 - 안규례
어쩌까 어쩌실까
구순의 울 아부지 올해도 또
손수 지으신 농산물 보내셨네이 폭염 이 염천에 구부러진 허리로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거친 손 눈에 보이네해마다 올해만 올해만 하시더니
이러다가 내 손 대신
일손 잡고 돌아가시것네젊은 날엔 탄광에서
석탄 가루 반찬 삼아 드시고
환갑이 지난 자식 지금도 품고 계시네복중 뙤약볕 피한다고
새벽이슬 밟으며
풀 뽑고 거름 놓아 길러 땄을
옥수수, 감자, 콩, 검은 봉지에
10남매 얼굴도 같이 넣어
봉다리 봉다리 꽁꽁 잘도 싸매셨네예나 지금이나
야물딱진 울 아버지!ㅡ시집 『눈물, 혹은 노래 』(청어, 2021)
감상평
이 시는 가장 직접적으로 아버지의 삶과 헌신을 그려 낸 작품입니다. 구순이 넘은 아버지의 노동은 단순한 농작업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오랜 세월 가족을 지탱해온 근육과 마음의 역사까지 드러냅니다. “탄광에서 석탄 가루 반찬 삼아 드시고”라는 구절은 아버지 세대의 고단한 시대적 배경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여전히 자식을 걱정하는 부정(父情)은 마지막까지 묵직한 울림을 남깁니다.
해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서정시는 많지만, 이 시의 특징은 구어체적 감성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까 어쩌실까’, ‘울 아부지’, ‘야물딱진’ 같은 방언적 어투는 훈훈함과 진솔함을 동시에 전달하며, 시인이 바라본 아버지의 삶을 현실의 감정으로 옮겨 놓습니다.

초승달 - 안규례
초승달 - 안규례
누가 몰래 파 먹었을까
움푹 패인 저
가슴을바람이 깎았을까
구름이 퍼 갔을까드넓은
하늘 모서리홀로 서성이고 계신 어머니
ㅡ시집 『눈물, 혹은 노래 』(청어, 2021)
감상평
달의 형상을 인간의 상처나 감정으로 비유하는 방식은 시에서 자주 쓰이지만, 이 작품은 매우 절제된 언어로 담담하게 접근합니다. 초승달의 빈 부분을 ‘가슴이 파인’ 모습과 겹쳐 표현하면서, 어머니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마지막 행에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어머니’라는 단어는 시 전체의 감정을 한순간에 바꾸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해설
초승달의 은유는 존재의 결핍을 상징하고, ‘하늘 모서리’는 고독의 장소로 확장됩니다. 시인은 매우 절제된 형식 안에서 소멸과 고독의 정서를 단정한 언어로 표현합니다. 단 네 연에 불과하지만 감정의 파고는 깊게 움직이며, 시집 『눈물 혹은 노래』가 가진 전체적 정서와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입니다.
안규례 시인 프로필



- 고향: 전남 화순
- 등단: 2005년 『문학21』
- 소속: 시하늘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 주요 시집
- 『눈물, 혹은 노래』(2021, 청어)
- 『봄이 오는 창문』(2024, 청어)
결론
안규례 시인의 작품 세계는 자연의 호흡, 고향과 가족의 정서, 부모 세대의 삶을 관통하며 인간 존재의 섬세한 감각을 시적 언어로 기록하는 데에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아침산책」에서 시작되는 봄의 기운은 다른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며 생의 순환과 계절의 변화를 포근하게 감싸안습니다. 「아버지의 곶감」과 「아버지의 들녘」은 노동과 부정, 순환의 시간 속에서 가족사를 기록하는 작품이며, 「초승달」처럼 짧은 시에서도 상실과 외로운 감정의 흐름이 정제된 언어로 구현됩니다. 특히 2026 수능 필적 문구로 선정된 표현은 안규례 시인이 가진 자연의 생동감과 생명력 있는 감각적 문장을 널리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봄의 숨결, 부모의 손끝, 고향의 기억, 계절의 흐름 등 일상적이지만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로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의 감수성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성찰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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