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문화

가을 시 모음집

by carrothouse32 2025. 9. 8.
반응형

가을 시 모음집

짧은 여름의 열기가 지나고 나면, 서늘한 바람과 함께 사색의 계절이 찾아옵니다. 가을 시 모음집은 낙엽이 지는 길 위에서 느끼는 쓸쓸함, 단풍에 스며든 사랑과 이별, 그리고 풍요로움 속에 깃든 삶의 깨달음을 시인의 언어로 담아낸 모음입니다.

가을 시 모음집

각 시편마다 다른 빛깔의 가을이 펼쳐지며, 때로는 고향의 풍경으로, 때로는 내면의 고독으로, 때로는 잔잔한 사랑의 고백으로 다가옵니다. 이 글에서는 여러 시인들이 남긴 가을의 정수를 함께 모아, 독자 여러분이 계절의 감수성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가을에게〉 / 고은영

나는 삶의 내적 균형을 잃은 지 오래고
당신의 모습도 균열의 전철을 밟고 있다
밤마다 잠들지 못하는 쓸쓸한 강변에
당신은 바람의 갈기로 서 있는가
아니면 굳은 가슴 두드리는 당신은
희망을 위해 떠남을 준비하는가

청춘의 앳된 기억을 떠올리는 당신도
맨 가슴을 드러내고 돌아오지 않는
소멸의 어느 궤도를 헤매고 있는 것인가
그곳은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마당
떠남을 위한 떠남인가 만남을 위한 떠남인가

당신은 후미진 이방으로 추락하는
비로소 서글픈 실존이다
당신은 왜 이리 긴 애증으로
시간이 갈수록 쓸쓸함을 가중시키고
불면의 그리움을 증폭시키는가

오늘 밤 세속에 잊힌 섬으로 오로지 시공을 떠돌다가
영혼의 그루를 후비던 삶의 상처를 위해
이제야말로 당신을 바라보는 삶의 더께에
나는 눈물나는 기도를 쓰리라

감상
이 시는 ‘가을’을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내면의 균열과 실존적 외로움의 상징으로 바라봅니다. ‘떠남과 만남’이라는 이중적 의미 속에서 삶의 고독을 되새기는 울림이 강하게 전해집니다.


〈가을 이별〉 / 오보영

화려하게
떠나간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겨울 향해 가는 건 마찬가진 걸

빛바랜 채
떨어진들

무에 그리 대수리요

낙엽 되어 구르는 건 마찬가진 걸

감상
짧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 가을의 덧없음을 이별에 비유했습니다. 낙엽처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소멸 앞에서 체념과 담담함이 오히려 평온하게 다가옵니다.


〈가을비〉 / 목필균

한나절 비에 젖은 나무들이
빗방울로 단풍든 속빛을 풀어냈다

접혀진 기억의 조각들이
따뜻한 눈빛이 오가던 날이
삶의 비늘을 떨어낸다

초로의 혈압이 오르고
여행이 사치가 되어버린 이즈음
생각만으로도 젖어드는 사람들

마흔 일곱에 돌아가신 어머니
자식 잃은 외할머니의 눈물
묵묵히 제 할일에 빠져있던 나

지금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지
불혹의 언덕에 서 있는 딸은
대를 이은 핏줄이 아름다운지

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옷깃 여민 우산 속 사람들

유난히 붉은 단풍잎 한 장
축축한 주머니 속에 넣는다

감상
가을비를 통해 개인의 기억과 가족의 상처를 되짚는 서정적 고백시입니다. 단풍잎 한 장을 주머니에 넣는 장면은 상실 속에서도 작은 기억을 간직하려는 의지로 읽힙니다.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 박가을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슴에
단백 한 웃음으로 찾아와
세월을 안타까워하며 위안의
차 한 잔에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

차가운 가을 밤바람 맞으며
그 곁에 앉아
내 이야기를 들어 줄줄 아는 사람

밤하늘에 별을 헤이며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짊어지고
길 떠나며
사색을 같이하여 작은 손잡아 줄 사람

지나간 추억
벗 삼으며 내일의 미래를 열어가는
내 영혼의 그림자
둘이 걷는 길, 동반자가 되어 줄 사람

文學을 사랑하며
다정한 마음의 편지를 써 줄 사람으로
인생의 예술을 이해 해 줄 수 있는 사람

가을을 닮아가는 사람
바닷가 파도와 갈매기 소리
그 화음을 들을 수 있어
음악을 좋아하는
이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감상
이 시는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 위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습니다. 차 한 잔, 별, 바닷가 같은 일상의 소재를 통해 동반자의 의미를 확장하며, 결국 가을은 사랑과 동행을 갈망하는 마음의 비유로 다가옵니다.


〈가을이어라〉 / 이진기

너는
가을,
가을이어라

나뭇잎 시들어
한 잎 지고
두 잎 지고
소슬바람 불어와
이리저리 흩어져 날리네

해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산허리 휘돌아 짙은 안개 내려오면
빠르게 지는 해가
야속하고 야속하여라

열정으로 시 붉은 단풍잎은
쌓여만 가는데
사랑으로 샛노란 은행잎은
쌓여만 가는데

앙상한 나목은
상념의 노를 저어
추억으로 흐르누나

화려함으로 성급히 다가와
쓸쓸한 여운을 남기고 가는,

너는
가을,
가을이어라

감상
이 시는 반복적인 호명으로 가을을 직접 불러내며 계절의 본질을 강조합니다. 단풍과 은행잎의 색채 대비를 통해 ‘가득한 열정과 사랑 뒤에 남는 쓸쓸한 여운’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가을 풍경〉 / 목필균

허수아비가 분신술을 썼는지
참새를 쫓는 지, 멧돼지를 쫓는지
논에도 있고, 밭에도 잠들지 못하고 섰다

툭툭 떨어지는 밤을 줍는 등 굽은 할아버지
망친 끝물고추 거두는 할머니 투박한 손끝에
고추잠자리 잠시 머물다 날아간다

바짝바짝 목마르던 봄 가뭄도
이마가 소금밭이 되는 여름 뙤약볕도
쓸데없이 쏟아지는 늦장마도

여물어 단단한 결실을 내놓은
풍성한 가을이 되기 위한 통증인 것을

가물가물한 하늘과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사이에
코스모스 무리지어 흔들리고 있다

감상
이 작품은 농촌의 구체적인 장면을 통해 ‘결실의 가을’을 묘사합니다. 고추잠자리, 허수아비, 코스모스 같은 소재들이 생생하게 등장하며, 풍요 뒤의 고단함과 그 과정의 의미를 담담히 드러냅니다.


〈가을 속으로〉 / 권복례

압력솥의 수증기들이
들끓기 시작하는지
솥뚜껑의 딸랑이가
따그락거리기 시작한다

남쪽 베란다에 쳐져 있던
버티칼을 걷고
멀리 또는 가까이에 있는
새벽 가을을 바라보며
가을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제 흰머리 듬성듬성하여
마음이 괜스리 들끓는
나를 만나게 된다

감상
일상의 소소한 풍경 속에서 가을의 내면적 감정을 포착한 작품입니다. 압력솥의 수증기와 흰머리의 대비는 ‘시간의 흐름’과 ‘삶의 무게’를 은근하게 연결합니다.


〈고향 가을〉 / 박인걸

차가운 아침 이슬
떡 호박 꽃잎에 눕고
고개 숙인 붉은 수수는
아침 햇살도 무겁다.

들국화 한낮에 졸고
길 잃은 벌들은
이리저리 방황하는데
고추잠자리는 아직 즐겁다.

백로(白露)의 고향 가을은
찬 서리를 불러들여
놀던 제비마저
강남 하늘로 내 쫓는다.

기러기 저녁하늘에 슬프고
달빛은 차가운데
시골 새댁 닮은 메밀꽃들만
가을 풍경을 돋운다.

감상
농촌의 고향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된 시입니다. 기러기와 메밀꽃 같은 이미지가 서정적인 슬픔과 따뜻한 정취를 동시에 전합니다.


〈가을, 저만치 오고〉 / 조남명

이른 아침
공원 벤치에 걸터 앉으면
소나무 사이 하늘 푸르고
구수한 땅 냄새 산뜻하다

풀 섶에선 새들 지저귀고
귀뚜라미 합창
나즈막이 떠다니는 고추잠자리
호수 물을 건드리며
잔잔한 물위에 결을 낸다

끼니 찾는 개미 바쁘고
새, 풀벌레 쉬는 날 없다
풀잎 위 은구슬 맺혀 구르고
늦 매미 쫒기는 듯 울어
가을, 저만치 곁을 내주고

감상
자연의 세세한 움직임을 담아낸 작품으로, ‘가을은 저만치 곁을 내준다’는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일상의 소박한 풍경 속에서 계절이 스며드는 모습을 잘 포착했습니다.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 이채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보일 듯 말 듯 피었다가
보여도 그만
안 보여도 그만인
혼자만의 몸짓이고 싶네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산너머 구름으로 살다가
들꽃향기에 실려오는 바람의 숨결
끝내 내 이름은 몰라도 좋겠네

꽃잎마다 별을 안고 피었어도
어느 산 어느 강을 건너왔는지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서글프지만은 않네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알 듯 모를 듯 피었다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혼자만의 눈물이고 싶네

감상
이름 모를 들꽃에 자신을 투영하며 ‘겸허한 존재감’을 이야기하는 시입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체념이 오히려 담백한 자유로 다가옵니다.


〈가을 노래〉 / 이해인

하늘은 높아가고 마음은 깊어가네
꽃이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이는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있는 친구가 보고싶고
죄없이 눈이 맑아진
어린시절의 나를 만나고싶네

친구여 너와나의 사이에도
말보다는 소리없이 강이흐르게
이제 우리 더욱 고독해져야
겠구나

남은시간 아껴쓰며
언제가 떠날 채비를
서서히 해야겠구나

잎이 질때마다 한웅큼의 詩를 쏟아
내는 나무여 바람이여 -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새
감기 기운처럼 스며드는가을
하늘은 높아가고
어느새 우리나이
늦 가을쯤 되어리라

감상
삶의 성찰과 추억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시입니다. ‘가을=떠날 준비’라는 성숙한 시선이 돋보이며, 이해인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고요한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비에 젖은 낙엽〉 / 정용로

사랑이 짙어지는 품속보다
이별의 생채기가 떠오르는 낙엽길

텅 빈 길모퉁이에서
바스락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여름비 맞은 낙엽은

울음도 미련도
함께 쓸어가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내일은
허리춤에 그녀 손 올려놓고
바삭바삭 낙엽 밟는 소리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감상
낙엽길을 통해 이별의 슬픔과 다시금 바라는 소망이 교차합니다. ‘낙엽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가 사랑의 회복을 꿈꾸는 화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따뜻한 낙엽〉 / 신동현

낙엽이 따뜻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네

그래서 늦가을에는 눈물도 낙엽처럼 따뜻하구나

한 잎,
두 잎

따뜻한 것들이 모이니 외로움에서도 따뜻한 김이 서린다

기쁨은 슬픔을 품고,
슬픔은 가을 풍경에 품어
모두가 따뜻해지면 좋겠다

온 세상이 따뜻해지면
굳게 잠겼던 문은 제 스스로
문을 여니

따뜻한 눈물 날아간 자리에서는
그리움도 따뜻해지리

낙엽에게는
사랑의 끝은 없다

감상
낙엽을 단순한 쓸쓸함이 아닌 ‘따뜻함’으로 전환한 시적 상상력이 독창적입니다. 사랑의 끝없는 순환과 위로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가을 결심〉 / 박인걸

산야를 불태우던 홍엽(紅葉)도
제풀에 꺾기여 수그러들고
함초롬히 피었던 들국화도
하나 둘 등불을 내렸다.

황급히 자리를 비우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가을에
불현듯 일어나는 불안함에
가슴이 뒤숭숭하다.

자신도 어느 날 홀연히
떠나야 할 존재인 것을 잊고
오만하게 살아 온 모습을
낙엽 뒹구는 길에서 깨닫는다.

지갑 속에 있는 징집영장처럼
입영이 큰 부담이 되더라도
그날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불처럼 살아야 하리라.

감상
가을의 퇴장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자각하는 시입니다. 징집영장이라는 구체적 이미지가 인생의 소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결국 ‘불처럼 살겠다’는 결심으로 귀결됩니다.


〈가을을〉 / 강인호

공원 벤치 앉아 시집을 읽습니다
지나가던 바람이 책장을 넘기고
맑은 햇살 내려와 같이 읽습니다
그대의 가을빛도 아름다운지
문득 그대 생각에 시집 내려놓고
가을을 읽습니다

감상
짧지만 맑은 울림을 주는 시입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가을을, 그리고 그대의 존재를 함께 읽어낸다는 발상이 잔잔한 서정을 전합니다.


〈가을〉 / 김지하

낙엽철
햇빛 속에서

머리를 긁어 올린다
흰 비듬이
우수수 쏟아진다

가슴에 꽂힌
모진 눈빛들 칼끝 같은 말들
다 쏟아진다

푸른 하늘

제주 어디쯤
검은 돌 틈 흰 갈꽃에 가 있는
내 마음 그물 새

가을.

감상
낙엽을 머리 비듬에 비유한 파격적 이미지가 눈길을 끕니다. 거친 현실 속 고통과 제주 풍경을 교차시켜 ‘가을’을 고통과 해방이 공존하는 시간으로 그려냅니다.


〈쓸쓸한 가을〉 / 이재환

어느 산 어디든
물 들지 않는 곳 없네

갈바람은 그리움 남기고
가을은 붉은 눈물 흘리네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은
내 마음처럼 거리를 헤맨다.

감상
간결한 구절 속에 ‘가을=붉은 눈물’이라는 압축적 은유가 돋보입니다. 낙엽과 마음을 겹쳐서 쓸쓸함을 직관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가을이 내게 말하네〉 / 나상국

가을이 내게 말하네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인데
뭘하느냐고"

가을은 또 말하네
"누군가 사랑하려면
마냥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무작정 길을 나서서
사랑을 찾아보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단풍이 왜 저렇게 붉은 줄
너는 아느냐고"
그 뜻을 잘 새겨 보라네

난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
왜 단풍이 저렇게 화려한 색의
옷으로 갈아입을까?
단풍이 곱게 물드는 이유는
나무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라네

가을이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랑은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지키고 가꾸라는
말인 듯하네

감상
가을을 의인화해 ‘사랑의 교훈’을 전하는 작품입니다. 단풍의 색을 ‘자기 보호’로 해석한 대목이 독특하며, 인생의 태도를 은근히 일깨웁니다.


〈가을소풍〉 / 김광석

손꼽아 기다리는 날중 길일
청명한 가을하늘
부서지는 햇볕 마시며
노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그 기대감으로
두손모아
한번도 보지못한 하느님께
간절한 소원담아
기도했던 어린시절

숨겨진 끼 발산하며
보물찾기 신났던
가을소풍 추억이여

지금은 인생의 소풍떠나
황혼역 도착하면
찾은 보물 던져주고
바람따라 가리라

감상
동심의 가을소풍에서 시작해 ‘인생이라는 소풍’으로 확장됩니다. 마지막에 황혼역으로 이어지는 전환이 서정적이면서도 인생론적 울림을 줍니다.


〈가을단상〉 / 정병옥

뜨거운 태양을 약올리는것은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의 장난으로
스치며 지나가는 투명한 소리에
시원해진 가슴으로 노래를 담는 것.

코끝으로 가을을 느끼며
가냘픈 코스모스의 유혹에 찡긋거리니
땀 흘린 사간을 보상이나 하듯이
싱그런 햇살에게 나를 맡긴다.

숨어 돌던 바람소리에 잠을 깨우고
이글거린 태양이 한눈을 팔 때
곰살궂게 다가온 바람 한 점이
축축해진 살갗을 말리고 있는데

터벅 터벅 걷는 무거운 발걸음에
해거름의 노을이 다가와 미소 지으니
하루를 엮어 세월에게 묶으니
속삭이듯 가을에게 기대어본다.

감상
바람과 햇살, 노을 등 감각적 이미지로 가득한 시입니다. 가을이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하루의 마무리처럼 ‘세월에 기대는 순간’임을 잘 표현합니다.


〈가을의 눈물〉 / 김남기

하늘이 그날처럼 눈물을 흘린다.
가녀린 사람들을 후리치면서
곳곳에 상처만 남기시더니

그리운 사람들을 기억이라도 하듯
뿌연 안개 속에서 울고 있다.

흔들어 버린 지층
상처 난 보금자리를 안쓰러워하며
회색빛 도시를 적시고 있다.

아마추어들이 키를 잡은 배는
하염없이 바다를 떠돌며
폭풍우속을 헤매는 밤

광인들은 광야에서 무서운 칼춤을 추고
두려움에 떠는 잡초들 위로
가을비가 내린다.

암담한 세상 폭풍우 속에서
나의 무섭고 어두운 밤을
그대가 밝혀 주었다.

감상
사회적 혼란과 개인적 고통을 함께 담은 작품입니다. 가을비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세상의 폭풍’과 ‘내면의 어둠’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가을꽃〉 / 이원문

옛 초가울뒤 가을꽃은
흔히 부른 이름인데
언덕 배기 냇둑꽃은
들국화 밖에 모른다

여기저기 노란 들국화
그 향기 그윽하여
쓸어 안던 들국화
다른 꽃도 많으렴만

그 꽃 이름 가물대고
모양새에 붙인 이름
어찌 그 꽃을 잊을까
관심 없이 지나친

어릴 적 고향의 꽃
눈물도 기쁨도
함께 했던 고향 들꽃
이 가을 그 꽃에 꿈을 묻는다

감상
들국화를 매개로 고향의 추억과 감정을 불러내는 시입니다. ‘꿈을 묻는다’는 마지막 표현이 향수를 넘어 삶의 뿌리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가을안에 산다〉 / 한인수

만물이 살아있는
가을의 대지 위에
흥미로운 오색이 일렁대며
천지를 가늠하게 하고
사랑을 속삭이는구나

천지가 개벽된들
오색 물결은 출렁대고
가을의 풍미를 자아낸다.

흐르는 물방울들은
산산이 흩트려져
땀방울로 변신하여
살아가는 흥미를
힘들게 느끼게 했다.

이제는 한 세상
오색이 출렁대는 곳
산야에 담그고
가을 안에 덤이 되어 살리라.

감상
가을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산다’는 적극적 태도를 담은 작품입니다. 오색의 풍요로움이 삶의 활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을 노래〉 / 고은영

청춘이 뒤집힐 거리는
이제 나에게 없다네
가야 할 곳이 없으므로
이제는 돌아올 필요도 없다네

민망한 사랑이여
이 가을의 맥박 위에서
무의미한 나는 아직
계절의 눈물보다 더 아픈 눈물을
보지 못했다네

메마른 바람이 전신을 휩쓸고
이미 우수수 낙엽처럼 낙하한
청춘의 앙상한 가지
바람에 휩쓸리는
수취인 불명의 편지들이
저 어느 잊힌 시공에서
풍문도 없이 반송되고 있다네

고통에도 색깔이 다양하다네
거창한 수식어가 없이도
충분히 고독한 삶의 대가들은
올해도 축축한 의식에서
가을로 일어서고

때론 상처로 내몰리는 일조차
자조적일 수밖에 없는
지독한 외로움의 모반으로
결국 홀로 서는 일

그토록 절실한 외로움의 사열 속에도
나의 노래는 오로지 세상을 향한
사랑을 외쳐야만 한다네

감상
삶과 청춘, 외로움을 가을에 투영한 긴 독백 같은 시입니다. 고독을 직시하면서도 ‘사랑을 외쳐야 한다’는 마지막 다짐이 울림을 남깁니다.


〈가을이〉 / 변영교

나뭇잎을 밟으며 자박자박 오고 있다
풀대궁을 흔들며 건들건들 오고 있다
앙가슴 솔솔 적시며 추적추적 오고 있다.

온 산을 불태우며 검실검실 가고 있다
가랑잎을 뒤적이며 건중건중 가고 있다
앙가슴 벅벅 긁으며 터벅터벅 가고 있다.

감상
가을의 움직임을 의태어와 의성어로 리드미컬하게 표현했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가을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생생히 들립니다.


〈가을〉 / 김백기

가을이 오면

만산에 단풍 들 때
검은 머리 백발 되고

무성하던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 질 때
무성하던 머리카락 우수수 떨어진다

싸늘한 가을바람 불어올 때
쓸쓸한 황혼이 찾아온다

감상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노화를 직결시킨 작품입니다. 단풍과 머리카락을 연결한 비유가 단순하면서도 강렬하여, 삶의 무상함을 직관적으로 전합니다.


마무리

이번 모음집에 담긴 가을 시들은 하나의 계절을 바라보는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시선이자 목소리였습니다. 어떤 시인은 가을을 ‘떠남과 이별의 계절’로, 또 어떤 시인은 ‘사랑과 동행을 찾아가는 순간’으로, 또 다른 이는 ‘고향과 삶의 결실을 돌아보는 풍경’으로 그려냈습니다. 낙엽, 단풍, 비, 바람 같은 공통된 소재가 시마다 등장하지만, 표현과 해석은 저마다 달라서 결국 가을은 ‘모두가 공유하지만 누구에게나 다르게 다가오는 시간’임을 확인하게 합니다. 이 모음집은 각기 다른 작가들의 언어로 가을을 겹겹이 읽는 즐거움을 주며, 독자에게도 자신의 내면의 가을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728x90
반응형

'여행과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배사 모음  (0) 2025.08.31
불 꿈해몽  (0) 2025.08.23
인천 송도 카페 꼼마  (0) 2025.07.30
6월 수요예배 대표기도문 모음집  (0) 2025.05.27
트랄랄레오 트랄랄라  (0) 2025.05.20